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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2017)」에 매겨진 평론가들의 후한 점수가 공감되지 않는다. 설마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기에 위신상 서운한 소리를 못 하는 것일까.

괜히 서운한 소리했다가 돌아오는 말이 고작 "그럼 네가 만들어 보시던가?"면 체면도 안 설 테고 말이다. 해서 글쓴이가 용기있게 71년도 작품과 리메이크작의 비교를 통해 서운한 소리를 해보겠다. 그냥 무식해서 용감한 것일 수도 있으니 행여나 노여워들 마시라.

매혹당한 사람들 커스틴 던스트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2017년 9월 개봉.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인물들의 심리 묘사일 것이다. 돈 시겔 감독의 71년 작품은 원작 소설에 충실하다. 인물들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서술한다. 그 정도가 거의 떠먹여 주는 수준이다.

반면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것은 '뉘앙스'를 풍긴다. 감독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여인네 치마 속 고쟁이만큼이나 꽁꽁 감춘다. 묘사나 언급을 자제하고 극을 관통하는 '분위기'를 통해 그렇게 느낄 만한 뉘앙스만 살짝살짝 주기 때문에 관객들은 인물들의 심리를 눈치껏 파악해야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매혹당한 사람들

돈 시겔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 1971년.

낌새를 정확히 주지도 않는다. 때문에 마치 화가 난 여친이 남친에게 "내가 왜 화났는지 정말 모르겠어?"라고 물을 때처럼 어리둥절하다. 못 알아차리면 숙맥이고 눈치 없는 사람 취급할 작정이었을까.

우스갯소리로 '여자어'처럼 비논리적이다. 인물의 심리를 파악할 만한 묘사들이 생략되었거나 최대한 자제해 표현되었기 때문에 종국엔 파국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예를 들어서 71년작은 15세 관람가가 무색할 정도로 주인공과 세 여자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마주한 두 여자의 방을 사이에 두고 오늘은 어느 방에 들어갈까 고민하는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있었다.

매혹당한 사람들 1971

그러나 콜린 파렐과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엘르 패닝 사이엔 그런 묘사가 너무 부족하다. 때문에 등장인물들에 감정이입이 힘들었다.

또 71년도 미스 마사(제라르딘 페이지)는 굉장한 요부로 그려져서 그녀의 행동들이 납득되는 반면에 2017년도 미스 마사(미콜 키드먼)는 지나친 품위로 속내를 알기 쉽지 않다. 묘사를 하더라도 그 정도가 마치 김성모 화백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급이라고나 할까.

매혹당한 사람들

묻고 싶다. 예컨대 누군가 피아노 주위를 맴돈다고 해서 그가 피아노 연주를 좋아할 것이라 단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센스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저 잠깐 주위를 맴돈 콜린 파렐만 보여줬을 뿐이면서, 그를 죽도록 소유하고자 하는 니콜 키드먼의 마음을 수긍하라는 건 난센스다.

막말로 병신 만들기를 너머 송장치레할 정도라는 건 상당한 배신감, 나아가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인데, 고상한 그녀는 언제 그토록 그에게 빠져들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질투심이란 인류의 보편적 감정이기에 무조건 수긍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두 사람이 하긴 했다는 건가? (...) 그야말로 "쳤네. 쳤어."급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정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로 그녀의 심리를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배은망덕한 이방인을 다스리는 원장의 권력욕 말이다.

조 앤 해리스, 엘르 패닝

조 앤 해리스 (좌), 엘르 패닝 (우)

그러나 그 역시도 뉘앙스만 풍길 뿐이어서 '아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경우의 수만 늘어날 뿐 속시원한 맛이 없다. 설마 감독은 "이것이 여자의 복잡 미묘한 심리야"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엘르 패닝이 맡은 역할은 71년 작의 조 앤 해리스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소화했다.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17세 소녀의 당돌함과 영악함이 조 앤 해리스의 뇌쇄적인 눈빛을 타고 흐른다. 두 작품을 비교해서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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